‘전족' (원제:三寸金莲/삼촌금련) *촌(寸)은 서양식 인치와 같은 단위로 1촌=3.3cm이다. 3촌은 대략 10cm
도서관에서 중국소설을 고르면서 빨간 표지의 '전족'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책을 빌렸다. '전족'이라는 단어는 일단 부정적인 느낌과 되게 징그러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전족'이라는 단어는 그 시절의 사람들이 한 시대의 사람들이 '미'를 추구했던 한 방식으로 정의가 바뀌었다.
-대략의 줄거리 가난한 집의 '과향련'이라는 소녀가 '전족'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고통때문에 '전족'을 하기 싫어하지만 전족으로 인해 부잣집의 며느리가 된다. 그리고 '전족'을 하며 집안 내 여자들의 권력다툼이 가장 많은 이야기 부분을 차지하고 마지막에는 중국이 전족반대운동이 하는 시대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겪으면 전족시대의 처음과 끝을 살아낸 과향련이 죽으면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향련이 전족을 하고 대문 밖에 나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예전에는 다른 여자들 발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이제 본인 일이 되고보니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그제야 사람 발도 얼굴처럼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꺠달았다. 얼굴은 못생기거나 예쁘고, 넓적하거나 갸름하고, 검거나 하얗고, 야무지거나 순박하고, 곰 같거나 여우 같다. 발은 크거나 작고, 두툼하거나 갸름하고, 똑바르거나 비뚤고,평평하거나뾰족하고, 둔하거나 민첩하고, 무겁거나, 가벼웠다.- 27쪽
향련이 전족을 하고 처음으로 밖으로 나온 날의 묘사이다. 처음에는 고통과 아픔때문에 전족을 풀고 싶어하지만, 자신이 전족을 두르고 그리고 밖의 사람들을 보며 발의 모양새에만 집중하게 되는 모습을 정말 잘묘사했다.
나도 더 예뻐지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서 화장품이나 혹은 관리를 받고나면 내가 신경쓴 부분이 타인의 얼굴에서 더 잘보이는 경험을 한적이 있다. 내가 한 모습보다 별로인 사람을 보면 나는 내 모습에 그런대로 만족을 했지만 내가 화장품을 바르거나 아니면 관리를 받은 부분보다 더 예뻐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저절로 그 사람에게 시선이가고 내 모습에 불만족했던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비교가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데로 꾸미고 관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그렇게 자유롭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나의 나름의 기준과 가치관대로 꾸미는게 옳다고 생각한 이후로 나는 화장을 하더라도 숏컷을 안하더라도 내가 되고 싶은 내가 되는 것으로 탈코르셋을 했다고 생각한다.
향련은 가마에 오르기 전, 할머니를 부둥켜 안고 한바탕 울었다. 할머니도 눈물범벅이 된 채 이것저것 당부를 잊지 않았다."할미가 못나서 널 따라가지 못하니 조심해서 잘 가려무나. 네가 천국이나 다름없는 집으로 시집을 가니, 이제야 할미는 마음이 놓이는 구나.그동안 오랫 시간 함께 살았으니 할미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지?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게 있는데, 전족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할미를 미워했잖니? 할미 말 막지말고 끝까지 들어. 지난 십 년동안 이 일로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는지 몰라. 오늘은 꼭 말해야 겠어. 사실 이 일은 네 엄마의 유언이었단다. 네 발을 잘 싸매주지 않으면 귀신이 되어서라도 찾아올 거라고......."-44쪽
"이 신발들은 우리동네에서 제일 복이 많은 앞집 흑자 엄마가 만든 거란다. 이 신발을 어떻게 신어야 하는지 말해줄 테니, 할미 말 잘들어.조금 있다가 먼저 이 자주색 비단 신으로 갈아 신어라. 이 신발은 '백자'라고 부르는데 나중에 아들을 낳을 수 있게 해준단다. 그리고 이 노란색 신은 가마에 탈 때 자주색 비단 신 밖에 덧신는 '황도혜'란다. 꼭 기억하렴. 이 신발을 신고 절대 친정집 땅을 밟으면 안돼. 조금 이따가 할미가 가마까지 안아서 데려다 줄 거야. 그리고 시댁에 도착하면 꼭 붉은 양탄자 위로만 걸어야 한다. 절대 흙을 밟지 말고 곧장 혼례장으로 들어가야 한다.(후략)-45쪽
손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글만으로도 느껴져서 너무 감동스러웠던 장면이었다. 할머니는 전족을 시작해야하는 시기를 미루고 미루다큰 맘을 먹고 향련의 발을 동여맨다. 주변 사람들은 다 큰 아이의 발을 동여매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우니 전족을 포기하라고 하지만 할머니는굳센 결단력으로 향련의 전족을 마무리한다. 이 이야기를 미뤄보아 할머니 또한 전족은 사랑스러운 손녀에게 너무나도 아프고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족 시작을 계속해서 미뤄왔던 것이었는데. 결국 할머니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손녀의 시집과 미래를 위해 전족을 시작한다. 전족이 고통스럽고 악습이라는 것은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손녀가 시대에 흐름에 순응해 행복하게 살기 바랐기 때문에 손녀의 발을 꺽어 전족을 했다. 그리고 결국 향련은 할머니가 만들어준 작은 발을 계기로 부잣집에 시집을 가게 됐다.할머니는 손녀를 시집보내면서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한 편으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부적의 의미를 가진 신발을 손녀에게 쥐어주며 손녀의 행복을 기도한다. 이 대목에서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끝없는 사랑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보면 기괴스럽기도 한 전족의 신발 종류를 모아서 보여주는 페이지 또한 있다.정말 웃긴게 그 때 그 시절 '전족'이 '미'의 기준이었던 시절의 이렇게 다양한 기준의 신발과 모습은 아름다웠을 수도 있다.하지만 현재는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고 무섭기만 하다. 오늘 아침에 유튜브를 보면서 남자 성형외과 의사 둘이 나와서 '현재 트렌드 코모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 여러 기준으로 얼굴의 비율과 그리고 이목구비 비율을 따지며 코 모양은 반 버선, 직 반버선 등 다양하게 설명하는 것은 물론 재밌었지만.기괴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치 하나의 물건처럼 재단하고 비율을 따지고 찢고, 깍을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만연하게 퍼져 있고 그것을 당연스럽고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의 입장이 기괴했다. 정말 우습게도 지금 우리 시대에서 채용하고 있는 많은 미의 기준들은 끊임없이 변할 것이고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그 미의 기준들은 나중에 '전족'만큼이나 징그럽고 이상할 것이다.
전족의 세계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향련은 이 책을 통해 여자의 몸은 온통 엄격한 규칙과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규칙에 따르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피해야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손발의 움직임은 물론 걸음걸이, 앉고 눕는 자세, 눈, 입 모양, 목소리까지 기준에 따라야 한다. 또 머리 모양, 옷차림, 장신구, 화장법, 피부관리법 등 모든 것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완벽한 전족을 완성할 수 없다. -107쪽
전족의 세계는 과연 누가 규정했을까? 누가 아름다움을 정의내리고 고정시킬 수 있을까? 이 문단을 읽으면서 전족을 하는 그 때 그 시절을 욕하는 지금이 정말 전족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틈만 나면 정석 미인, 정석 비율 아름다움에 대해 정의 내리고 그 기준에 벗어나면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지금 시대에 과연 전족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전족으로 돌아가려는 자매들에게옛사람이 전족을 좋아하고 지금 사람이 전족을 좋아하는 것은 낙후와 진화로 구분할 수 없다. 옛날에는 모두 전족여자였고지금은 천족(天足: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발)여자가 많은데, 이것은 야만과 문명의 차이가 아니다. 단지 시대와 장소에따라 풀속이 다르고 미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전족 여자를 노리개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각 집안 묘지에 묻힌 여자 조상들은 모두 노리개인가? 오늘날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자들중 이 노리개 배 속에서 나오지 않은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옛 사람의 시선으로 지금 사람의 시비를 따지면 당연히 완고하게 반대할 것이고,지금 사람의 생각으로 옛 사람의 방식을 평가하면 멍청하다고 할 것이다. 추운 지방 사람이 더운 지방의 사람에게 짧은 옷을 입는다고 욕하고, 더운 지방 사람이 추운 지방 사람에게 모피와 가죽 모자를 쓴다고 욕하는 것과 똑같다. 전족 여자가 자연미를 버리고 억지로 모양을 만든다고 비난하는데, 신여성이 곱슬머리를 만들고 가슴을 동여매고 높은 구두를 신는 것도같지 않은가? 이것도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아닌가? 신여성이 하는 것들은 모두 서양에서 전해진 것이다. 서양 나라가 강대하니까 중국이 서양의 악습을 배우는 것을 신식 유행이라며 반기는데, 만약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면 서양 여자들이 중국을 따라 전족을 하지 않겠는가? (중략)전족 여자가 약해서 국가가 강해지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아프리카나 호주 원주민 여자들은 신체가 매우 건강한데 그 국가는왜 유럽, 미국, 일본보다도 강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노예가 되었나?(후략)-241쪽
향련은 전족을 비판하고 악습을 폐하라는 자들에게 글로 답한다. 흐름에 휩쓸려 전족을 푼 사람들은 발에 힘이 없어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다시 전족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쉽게 용기를 내지못하다향련이 쓴 글을 보고 전족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해서는 이 글처럼 옳고 그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행을 따르는 것 또한 옳고 그름이 없다. 하지만 유행을 따르기 전에 아무런 비판 없이 그 유행에 아무런 견해가 없이 그저 따라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흐름이라도 어떠한 유행이라도 나 스스로가 먼저 생각해보고 그것이 옳다면 행하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손녀의 전족을 미루다 미루다 어쩔 수 없어서 시작하는 할머니, 자기 딸에게만은 전족을 시키지 않기 위해 멀리 떠나보내고그리워하는 전족파 수장 과향련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애달프다.-278쪽
전족으로 인해 고통과 그리고 권력을 잡기도 했던 과향련은 자신의 딸을 전족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멀리 떠나 보낸다. 과향련은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전족으로 인해 동씨 집안에 얽혀 있었고 그녀는 그의 딸이 그런 아픔을 겪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자신이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다른 방식으로 딸에게 전달한다.
전족파와 반전족파의 대결은 개인적으로 꼽는 이 소설의 명장면이다. 전족파는 전족파대로, 반전족파는 반전족파대로 자신의 논리와 이유가 있다. 또한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고, 약점도 있다. 이런 부분은 최근 일부 탈코르셋 운동 지지자들이 탈코르셋을 지지하지 않는여성을 공격하는 사례와 매우 비슷하다. '강요된' 개혁은 '억압된' 악습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278쪽
그녀뿐 아니라 당시 반전족파 여성들 사이에서는 하이힐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훗날 하이이힐이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악습으로 비난 받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전족을 벗어나 하이힐에 묶인 여서들, 정말 아이러니하다. 당시 사람들의 눈에도 전족과 하이힐은 큰 차이가 없었다. 반전족파 개혁은 과연 진정한 개혁이었을까?이런 모순은 전족파와 반전족파 여성 모두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전족 여성이 탈전족하는 과정도, 탈전족에서 다시 전족으로 돌아가는 과정도 모두 고통이었다. 다행이 전족파가 쉽게 무너진 덕분에 이 모순과 대립으로 인한 고통이 빨리 막을 내렸다. 전족파가 이렇게쉽게 무너진 이유는 역사적으로 수천년동안 이어져 온 봉건사회가 무너지는 시점과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오늘날 보수와 개혁은 대립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당장은 그 때처럼 천지가 개벽하는 큰 구조적 사회 변하는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앞으로도 페미니즘, 미투 운동, 탈코르셋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대립과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성 대립을 넘어 성 혐오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개혁은 필수다. 다만 그 옛날처럼 모순에 가득 찬 대립으로 상대에게고통을 주는 개혁이 아니길 바란다.-279쪽
중국의 옛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지금의 시대에 정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이야기 였고 흥미진진했던 이야기였다.그리고 다양한 생각이 들었고 책에 대해서 느낀점은 이렇다. 이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완벽하고 완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다른 것들과 부딪히고 해결하는 과정에서더 나아진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강점과 약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논쟁과 이야기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더 좋아지고 나아지길 바란다.
*이 소설은 30년간 스테디셀러라고하는데 이야기가 재밌는 것도 물론 한 몫하겠지만 보편적인 ‘미의 기준’ 그리고 다름의 존중이라는 입장이 녹아 있어서 꾸준하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